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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속삭임 (한국 문인협회,한울 문학 회원)

씨앗을 뿌리고 나서 본문

수필

씨앗을 뿌리고 나서

미쁘미 2012. 9. 4. 06:01



 

친구가 캐어다준,
밭 가장자리 에서 겨우내 푸른빛을 잃치 않고 꿋꿋히 버티어온
몇그루 꽃 무릇의 몸살 을 볼 때마다 어서 봄이 와야 될텐데
행여 얼어 죽지는 않나 하는 내 기우는 한낮 걱정에 지나지 않았다

 꽃샘 추위 속에서도
잎이 붉은 색갈을 띤 노랑꽃 어미는 겨우내 새끼들을 얼리지 않고 잘도 지켰다
얼마나 많은 새끼들을 이끌고 올라 오는지 참 대견하다

파릇 파릇 실파며 민들래 희뿌연 구절초가 많은 새끼들을 달고
밭 전체를 잠식할듯 고물 거리며 사랑스럽게 올라오고 있다

 얼어 붙었던 기나긴 겨울을 이겨내고 봄을 부르는 땅 속 꿈틀대는 작은 생명들은
갈아입을 옷 하나 없이 또 한번의 에리도록 시린 꽃샘 추위를 꿋꿋히 견디는데

매서운 바람이 옷깃을 스미고 눈발이 날려 세탁해 넣어 두었던 겨울 코트를
다시 꺼내 입고도 움추리는 나약한 나를 보고 어쩜 비웃을지도 모르겠다

 이 꽃샘 추위가 지나면 밭도 갈아 엎어야 되는데 올해는 저 많은 새끼들을 달고
올라오는 새 싹들을 보고 내 마음이 바뀌어 버렸다

 채소 심을 땅 평수가 좀 줄어들면 어떠랴 채소는 조금 덜먹고 봄 부터 가을까지
꽃들이 피어나는 함박 웃음에 나도 함께 웃을 것이며 바람이 가저다 주는
꽃들에 향기에 취해도 보며
내 눈을 즐겁게 해줄 내 마음을 흐뭇하게 해줄 저것들의 헌신을 마음껏 즐기리라

 이제 막 뾰족히 올라오는 저 어린 생명들의 사랑스러움은 얼마나 또 내 마음을 따스함으로 물들이는가!
아! 이런 대지의 오묘한 신비가 신묘 막측 이 아니고 무었인가

 

작년 김장용으로 뿌리고 남은 총각무 씨앗과 요리할때 향채로 쓸려고 그것 역시 작년에 뿌리고 남은 
스위트 베이즐 씨앗을  갈지 않은 밭 한쪽 구석에 대충 괭이로 호비작 거리고 뿌려두었다

원래는 충분한 거름과 함께  깊게 밭을 갈고 곱게 흙을 펴서 씨앗을 뿌려야되는데,
진달래 피기전에 씨앗을 뿌려야 벌래가 먹지 않는다는   엄마의 전화가
나를 조급하게 한것이, 몇가지 여건 도 함께  그냥 대충 심게 했다.

매년 씨앗을 뿌려 보지만 채소씨만큼 정성 어린 손길을 기다리는 것도 없는것 같다
보드랍게 흙을 고르지 않고 밑 거름을 재대로 하지 않으면
나중 웃거름을 아무리 잘해도 충분한 밑거름 을 한 것처럼 튼실하지  못하다

그런걸 알면서도 작은 텃밭 주위에 고물 고물 올라오는 다른 꽃들이 희생 되겠기에
혼자 얼마나 먹겠다고 하는 생각과  이렇게 대충 뿌려도 이웃집에 나누어줄 정도는 되기에,

올해는 씨앗이 올라오면 그냥 그런대로 정성껏 가꾸기로 하고 뿌리는 김에
동자꽃 씨도 뿌리고 일년생 국화 씨도 뿌렸다,
자고나니 촉촉히 봄비도 내리니 머지 않아 새싹들이 올라오리라

보드랍고 여린 싹들을 솎아서 엷은 된장국을 끓이고 쎌러드를 만들고
무더기로 솟아오르는 꽃 모종을 하면서
난 또 그렇게 이마에 한줄씩 채소들과 꽃들과의 대화로 주름이 늘어 가리라
산다는것이  무었인가 끊임없이 가꾸고 키우며 배려하고 사랑하며
마음을 주고 받는것이 아닐까?

내가 사랑해야 할 것들에 대한 내 사랑이 얼마나 지극 하냐에 따라
삶의 질이 틀려지는게 아닐까? 그 사랑해야 할 것들이 어느 종류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인생 가치관이 틀려질 것이며
그로 인해 행복의 가치관도 틀려질 것이지만 말이다

감미로운 봄비 소리가 음악 처럼 촉촉히 내리는 아침,
살아 있음이 감사한 이아침 어서 밝은 햇살이 비추어 밤새 꽁꽁 얼었던
저 새싹 들의 따스한 기지개를 볼수 있기를 고대하며

난 참  별것도 아닌것을 가지고  행복한 여유로 이 아침이 푸근하다~


글/강제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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